아니 나는… 내가 4년 반 동안 한국을 못 갈 줄 몰랐고 이놈의 역병이 2년 넘게 지속될 줄도 몰랐으며 출발하는 날 아빠가 뇌경색이 올 줄은 더더군다나 꿈에도 몰랐지. 공항 가기 30분 전에 엄마 문자 보고 패닉해서 남편은 현관문 열다가 나사 빠져서 문 손잡이 빠짐… 그 상태로 비행기 탔다.
우린 원래 아무 생각 없이 퍼지게 (사회적으로 거리는 둔 상태로) 먹고 놀 계획이었거든. 아빠 입원으로 모든 계획이 와장창 된 가운데 그나마 소소하게 식탐을 부려봤지만 계획보다는 미미할 수 밖에… 아빠랑은 당연히 밥 한 끼도 못 먹었고 엄마랑은 오며가며 병원 교대로 스치다가 집밥? 비슷한 걸 두어 번 같이 먹긴 했다. 둘이 앉아서 커피 한 잔 못 마셔본. 남동생도 바빠서 한국 와서 첫 며칠, 가기 전 날 빼고는 얼굴 보기도 힘들었고 대전은 거의 이모랑 할아버지만 계신 상태 나는 엄마랑 병원 교대로 간병.

제일 오래 시간을 보낸 충남대병원 재활센터 복도. 관절염센터를 겸해서 허리나 무릎 수술을 받은 노인 분들도 많지만 어린 아이들과 이제 내 또래쯤일 젊은 부모들을 보면 좀 더 마음이 그랬다. 나야 자식이 없지만 부모 아픈 마음보다 자식 아픈 마음이 더 무겁겠거니…



상황이 그래서인지 시집인 부산 가족들이 보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우선 우리 집보다는 사회화가 더 잘 된 분들이고 (…적어도 필터가 있다는 말씀) 가서 그냥 푹 쉴 수 있었으니까. 어머님은 차도녀 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귀여우신 것 같다. 뭔가 오랜만에 본 새끼들에게 너무 해주고 싶으신 게 많은데 우리가 못 따라드리는 느낌? 부산은 눈 뜨자마자 삼겹살 삼치전 닭도리탕 떡볶이 순두부찌개 가 줄 서 있는(…) 그리고 먹으면 등 지지고 떡이나 고구마 먹으면서 누워있음 이게 바로 행복한 돼지인 걸까 ㅇ_ㅇ

우리 집은 일단 코로나땜에 엄청 찔 줄 알았더니 그렇게 안 쪘네? 아니다 얘가 옷으로 가려서 그렇다 당장 벗겨보면 살이 한 바가지다 등 인신공격부터 그래도 결혼했으면 남자랑 안 살아도(??) 애는 하나는 낳아야 한다는 임신공격까지 후두룩 연타로 때리는 사람들이라. 아니 남편이랑 안 사는데 애는 왜 낳아 쟤가 걸어다니는 정자은행이야 뭐야
다 너 좋으라 하는 얘기다 여자는 남편은 없어도 애는 있어야 한다 딸이면 좋은데 안 되면 둘은 낳아봐라 (?) 라는 도저히 진보인지 보수인지 모를 메세지를 주는 엄마는 올 해 싹 (내 몸을) 산전 검사하고 살 빼고 엽산이며 비타민을 먹고 준비해서 내년에 (내가) 애를 만들어서 후년에 (내가) 애를 낳아 후후년에 당신의 첫 손주 돌잔치를 하는 그런 계획을 (나 없이) 세웠는데.... 당장 아빠가 병원에 드러눕는 바람에 망했다고 아빠를 은근 구박했다.

뭐 여튼 우리 집보다 훨씬 점잖고 조용한 부산 집이 좋더라고. 어머님도 물론 손주를 바라시지만 나한테 직접적으로 낳아라 보다는 하나는 있으면 좋겠다- 정도셔서 뭐 그러려니. 그 연세에 애 안 낳는 부부 이해하시길 바라는 것도 무리인 거 나도 알고 있음.
아 그리고 언니들은 확실히 오빠보다 좋다(?) 오빠도 물론 좋지만 역시 언니가 최고야... 새언니든 시언니든 역시 언니는 좋은 거야
한 집에서 자라도 똑같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큰누나는 상냥다정해서 의지가 된다면 작은누나는 유쾌하고 긍정적이라서 좋아. 아주버님들도 다 좋은 분들 같은데 사실 아주 잘은 모르겠고 아주버님들이란 호칭이 입에 안 익어서 (결혼하고 뵌 횟수가 손에 꼽히다보니;) 무심코 형부나 오빠로 부를까봐 걱정 돼 정신줄 챙기라고ㅠ 그나마 다행인 건 큰 아주버님은 남편이랑 띠동갑이니 편하게 오빠라고 부를 범주를 넘어가셔서 아직 그 실수는 안 함 작은 아주버님한테는 오ㅃ… 까지 나올 뻔한 적 있음 ㅠ
물론 우리 집은 촌수나 항렬이 나이에 안 맞아서 내가 올 해 5촌 조카사위를 봤고 (잘하면 내년에 이모할머니 됨) 남편은 결혼 직후 유치원도 안 간 사촌 처제가 장난감 만지던 손으로 과일 조물락거리다 강제로 입에 넣어주고 (…) 그랬지만

그리고 서울 가있는 남동생은, 참 귀엽고 쫌 대견하지만, 역시 걱정되는 존재다. 저거 똥기저귀 차고 다닐 땐 저런 것도 커서 사람이 되기는 되나 싶었는데 이번에 보니 어찌어찌 뭐 대애충 사람은 된 거 같거든. 근데 사람이 된 뒤에도 걱정이다. 남편도 누나들한테 그럴까? 누나들이 결혼 전에 쟤가 막내라 아무 것도 모른다고 여러 번 말해주신 거 같긴 한데.... 네 그러고보니 참 뭐 모르는 게 많더라구요... 근데 뭐 어쩌겠어요 내 눈 내가 찌른 거니 알아서 데리고 살아야죠...
그래도 갈 때 동생이 공항까지 데려다줘서 제법 편하게 왔다. 나 가끔 소름끼쳐 얘 나랑 너무 닮았어… 3년 만에 봤더니 그 사이에 눈 다크서클 밑에 점 생겼는데 그것까지 닮음

옴이크론 덕에 12월 초 주말 공항은 진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4년 반 만에 가서 처음으로 엄마아빠랑 안 싸웠고 (라기보다는 그랬다간 너무 빅불효가 되는 상황이었고) 친정 가서 고생하고 시집에서 늦잠 자고 시어머니 밥상 받는 팔자 좋은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다 못 만나고 ;-; 더 보고 싶은 사람들도 더 볼 기회가 없었지. 그게 좀 아쉽지만 또 이시국 상 내가 나대고 다니는 것도 민폐였겠지 싶다.

표 끊어놓고는 뭐 평일에 제주도를 가네 시간 안 맞음 서울 호캉스를 갈까 강릉 투어를 갈까 이랬지만 제일 자주 간 곳 충남대병원 여유있게 쉬었던 곳 부산 엄궁동 집 가장 유명한 곳 명지신도시 불륜핫플의 카페
명지가 신도시라 작은언니랑 친구분들이 사는 주택가 아파트촌은 부산답지 않게 길 넓고 반듯하고 깨끗하고 갱장히 좋은데; 바닷가+모텔촌+먹자골목+골프연습장+대형카페 모여있는 곳은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안 날 수가 없더라.
유튜브에도 올라온 모 로스터리 카페. 불륜하러 간 건 아니고 남편이랑 갔을 때 늦어서 문 닫아서 외관만.

처음으로 광안대교를 차로 지나가봤다 역광에 흔들려서 사진은 엉망이지만 부산은 참 예쁘고 신나는 도시 그 다이나믹하고 재미있는 곳에서 달님 같은 노잼맨이 배출 된 게 신기함



무엇보다. 몇 년 뒤에는 한국에 들어와 살아야겠지 않나 아니 적어도 한국에 자주 들어올 수 있는 쪽으로 진로를 바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방문이었다. 시간이 나에게만 흐르는 게 아니니 당연한 일이지만 양가 부모님의 노화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빠도 그렇고 어머님도 그렇고…
땡님이랑도 얘기했지만 진짜 사람 앞일 모르는 거라 내년에 봐요- 하고 온 다음 장장 4년을 못 왔으니 이런 일이 또 없다고 어떻게 장담을 하나.
그래서 아빠 컨디션이 3주 만에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혼자 걷겠다 싶게 훅훅 좋아지는 동안에도 퍽 심란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20년을 여기서 살았고… 한국에 가서 사는 것에 대해 언젠가 막연히 때 되면 돌아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시민권도 안 따고 있었지만 문득 생각하니 진짜 그럴 수 있나? 고민하게 되는.
엄마아빠 앞에서는 걱정 하지 말라고, 아빠가 악화돼서 병원 생활을 앞으로 더 오래 해야 되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먹여 살린다고 큰소리는 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무말 대잔치였음을… 내가 또 경솔하게… 내가 또 그런 잘못을…

지금으로서는 갱장히 혼돈의 시간임 동시에 여기 생활을 놓을 수도 없어서 야근을 하는데; 아빠는 오히려 왔다갔다 가능하게 사업하는 게 어떠냐고. 엄마아빠는 월급쟁이로 안 살아봐서 이 속편함을 모르는갑다 아 난 모르겠고 내 월급 주세요 난 출근했으니께 내 돈 달라고 이게 얼마나 좋은 건디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내가 5년 뒤에 한국 가면 재취업이 쉬울까.

쉬러 갔다가 고민만 잔뜩 얻어 왔지만 그래도 아빠 아플 때 마침 가서 간병을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고, 부모님이 늙는 걸 실감하는 건 조금 슬펐다. 그 와중에 엄마가 카드를 준 건 좋았다. 근데 엄카를 쓸 시간과 여유가 없었고 또 남편이 못 쓰게 했어 (…) 아 왜! ㅠㅠ

그리고 제발 이 시국 좀 끝나게 해주세요… 3주간 코쑤심 5회 실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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